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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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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주년 6.25전쟁 계기교육
작성자 권은숙 등록일 13.06.19 조회수 1385

 

6.25전쟁 63주년을 맞아 다음 글을 잘 읽어보고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가슴깊이 새깁시다

1. 6 25전쟁은 1945815일 한반도를 강제 점령하고 있던 일본의 패망에 따라, 미 소의 한반도 분단정책에 의해 비롯된 전쟁으로, 북한공산정권의 김일성이 스탈린의 사주와 모택동의 지원 하에 1950625일 기습적으로 38도선을 돌파 남침한 것을, 한국과 참전국이 함께 북의 공격을 막아내어, 우리가 공산화되는 문턱에서 북의 의도를 좌절시킨 전쟁이다.

2. 북한군은 6 25전쟁 발발 당시 소련제 전차 등 최신예 장비로 중무장되었고, 중국내전을 통해 전투경험이 축적된 막강한 전투인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6 25전쟁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발발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치밀한 사전 준비에 의한 계획된 전쟁이었다.

3. 이에 비해 남한의 군사력은 상대적 열세에 있었다. 19496월 주한미군이 철수한 이후 국군은 제 2차 세계대전시 미군이 사용하던 노후화된 경장비 위주로 무장되어 있었고, 전차나 대전차 화기가 전무한 상태에서 공비토벌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체계적인 전술훈련도 실시하지 못한 형편이었다.

4. 이러한 남북한의 군사력 불균형은 전쟁 발발 초기에 여실히 드러났다. 서울은 북한의 기습남침 3일만에 함락되었고, 국군은 북한의 전차를 대전차 무기 하나 없이 맨주먹으로 막을 수 밖에 없었다.

5. 침략자를 응징한다는 유엔 결의에 따라 국군과 유엔군의 투입 및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통 해 적의 후방을 차단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들기도 하였으나 예상치 못한 100여만 명의 중공군 개입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철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서울이 다시 피탈되고 탈환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6 25전쟁은 발발된 지 3년여의 오랜시간동안 남북한 서로간의 막대한 인력 및 국력이 손실되었다.

6. 그러다가 19537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전쟁이 끝이 났으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지 못하고 민족의 분단을 고착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하였다.

7. 휴전선 반대에는 우리와 같은 핏줄, 형제들이 살고 있다. 그토록 멀게 느껴지는 우리 조국의 반쪽은 뛰어가면 금방이라도 도착할 것 같은데 지금 이 시간 그 곳은 세게 그 어느 곳 보다 가기 힘든 가장 먼 장소가 되고 말았다

 

공부할 문제

1. 6.25노래를 불러보고 가사를 적어봅시다.

2. 6.25관련 사진 스크랩을 해 봅시다.

3. 6.25전쟁을 통해 국토 방위가 얼마나 중용한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4.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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